
처음으로 Cursor를 켰다.
18년 동안 기획서를 썼다. 화면설계서를 썼다. 개발자에게 “이렇게 만들어주세요”라고 쓴 문서를 수백 장 썼다. 근데 코드는 한 줄도 못 썼다. 정확히는, 쓸 필요가 없었다. 내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.
클로드 코드로 이용해보다가 커서로 한 번 써보려고 한다. 제미나이, GPT 모두 다 써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를 끌었다.
반신반의하면서 Cursor를 설치했다. 어차피 안 되면 다시 클로드 코드로 가면 되니까.
Cursor가 뭔지 일단 짚고 가자
Cursor는 VS Code 기반의 AI 코드 에디터다. 일반 텍스트 에디터처럼 생겼는데, 안에 Claude나 GPT-4 같은 AI가 붙어 있다. 코드를 작성하다가 막히면 AI한테 물어볼 수 있고, 아예 “이런 기능 만들어줘”라고 입력하면 코드를 생성해준다.
바이브코딩(Vibe Coding)은 이 흐름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방식이다. 코드를 직접 이해하거나 타이핑하는 대신, AI와 대화하면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것. 개발 지식이 없어도 된다는 게 핵심이다. 실제로 Andrej Karpathy가 2025년 초에 이 개념을 소개하면서 화제가 됐다.
처음 입력하던 순간
처음 Cursor 채팅창에 입력한 문장은 이거였다.
“파이썬으로 간단한 To-do 리스트 앱 만들어줘. 추가, 삭제, 완료 표시 기능 포함.”
엔터를 쳤다. 그리고 약 3초 후. 파일이 생겼다. 코드가 생겼다. 실행했더니 앱이 떴다.
18년 동안 이 과정에 개발자가 필요했다. 최소 며칠이 필요했다. 근데 지금 3초 만에 뭔가가 나왔다. 낯설었다. 기분 나쁜 낯섦이 아니라, 뭔가 기준이 흔들리는 그 낯섦.
더 신기한 건 수정 과정이었다. “버튼 색을 파란색으로 바꿔줘”라고 쓰면 코드 어딘가가 자동으로 바뀐다. 내가 어디를 바꿨는지 몰라도 된다. 결과만 확인하면 된다. 기획서에 빨간 펜으로 피드백 주던 것과 구조가 비슷했다.
기획자가 바이브코딩으로 할 수 있는 것들
써보면서 느낀 현실적인 범위를 정리하면 이렇다.
프로토타입 제작에 가장 유용했다. 디자이너나 개발자에게 설명하기 전에 “이런 느낌”을 직접 만들어서 보여줄 수 있다.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정렬이 된다.
개인 자동화 도구도 만들 수 있다. 반복 업무를 스크립트로 만들거나, 데이터를 정리하는 간단한 도구를 직접 만드는 게 가능했다. 개발팀에 요청하기엔 작고, 매번 손으로 하기엔 귀찮은 그 중간 영역.
다만 한계도 명확하다. 코드를 전혀 모르면 에러가 났을 때 막힌다. AI가 틀린 코드를 줘도 알아채기 어렵다. “왜 안 되는지”를 물어볼 수 있지만, 그 답을 검증할 능력이 없으면 그냥 믿는 수밖에 없다. 그 부분은 좀 불편했다.
기획자에게 바이브코딩이 의미 있는 이유
기획자의 언어는 원래 ‘요구사항’이다. 무엇을, 왜,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글로 쓰는 사람들이다. 바이브코딩은 그 요구사항을 AI에게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. 중간에 번역 비용이 줄어드는 셈이다.
물론 개발자가 필요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다. 프로덕션 수준의 서비스는 여전히 전문가가 필요하다. 다만 기획자가 “되는지 안 되는지”를 직접 확인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건 분명하다. 그게 협업의 질을 바꾼다.
18년 동안 개발자에게 “이게 구현 가능한가요?”를 물어봤다면, 이제는 일단 직접 해봐도 된다는 거다.
결론
Cursor와 바이브코딩은 기획자의 역할을 없애지 않는다.
다만 기획자가 직접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생겼다. 작고, 거칠고, 완벽하지 않지만 — 내 아이디어를 내가 직접 켜볼 수 있다는 게 달랐다. 그 감각은 꽤 오래 남을 것 같다.
아직 코드를 읽진 못한다. 그냥 결과를 본다. 기획자가 원래 하던 것처럼.
바이브코딩이 궁금하다면 Cursor를 설치하고 가장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보길 권한다. 요구사항 하나, 문장 하나. 어차피 안 되면 닫으면 되니까.